6.11.09

Papa called



*
몇시간전,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는 그림을 그리러 가서 아직 안왔고 늦게까지 운전하는게 또 그림을 그리는게 무리가 될까봐 걱정된다고 그랬다. 갑자기 영화 ' 사랑 후에 남겨진 것 들 ' 이 떠올라서 잠깐 속에서 울컥했다.

그리곤 신이나서 언니 얘기를 하는데, 언니는 저번에 대학원 졸업사진을 찍으면서 아빠의 바램대로 예쁘게 학사모를 씌워서 사진을 찍고 크게 인화해서 집에 걸어놨다고 했다. 지금건 노란색이고 박사때는 빨간색이라며 언니가 언제나 미국에 가서 빨간색을 쓰고 찍을 수 있을 까 하고는 나한텐 노란색 쓰고 찍을 순 있는거냐며 웃었다. 그리고 돈 벌어서 빨간색 쓰고 언젠가 찍으라고 했다.

아빠와의 통화는 80% 가 학교에 관한 내용인데 나름 사적인 얘기도 하고 싶어서 저번엔 왜 아빤 학교얘기만 하냐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더니 그럼 우리고 다른얘기 하자 며 서로 노력했었지만 그것도 잠깐 학교얘기가 아니면 3분 이상이 안 넘게 됀다. 언니처럼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이래저래 주절주절 거리는 타입도 아니라 (남들한텐 덜 하지만) 아빠와 나의 통화는 학교 얘기 말고는 사실상의 대화유지란 지속되기 힘들다. 그래도 그게 아빠 나름대로의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것도 또 물어보고 확인 하고 하는건 걱정되서도 있지만 나와의 시덥잖은 대화쯤으로 여기고 애정 표현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난 그런 방식도 좋다.

오늘 아빠와의 잠깐의 통화에선 엄마얘기가 2분 언니 얘기가 3분 다 알고 있는 내 학교와 인턴 얘기가 2분 그리고 뜬금없는 질문과 대답 2분.

아빠는 갑자기 여기에 온 걸 후회하진 않냐고 물었다. 돈도 많이 들었고 이것 저것 다 떠나서 너는 좋았냐고 여태까지. 지금 되돌이켜 봤을때 여기로 온게 어떤 것 같냐고. 사실 나는 섬세한 아빠와 여린 엄마의 서포트와 사랑 속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누구처럼 매일같이 일하지 않아도 됐었고 누구처럼 한국에 가 말아 대학을 가 말아 고민 할 필요도 없었고 누구처럼 자기가 먼저 전화해야만 가족과 연락이 닿는 그런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아빠한테 불평을 늘어 놓을 수 없다. 그건 나만의 유일한 의지 중 하나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를 믿고 서포트 해주는 부모님께 대한 진짜 작고 작은 보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실제를 말한다면 나는 조금은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아프고 힘들때 마다 누군가 기쁘고 슬픈 소식이 있을때마다, 내가 한국이 아니라 호주에 있다는 사실이 아쉽고 슬프고 미안하고 보고싶고 하는것들을 떠올리면. 그래. 나도 조금은 속상해 해도 후회해도 되겠지. 그치만 나는 아빠한테 이런얘기 할 수 없으니까. 아빠는 이런얘기는 가급적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왜냐면 그런질문을 받는 날은 잠을 잘 수 가 없으니까.


음. 그래. 제일 미안했던게 있다면
엄마가 아팠을때라고 하자.  그리고 1년동안 몰랐던거.
그래서 아빠는 내게 저런 질문을 할 거면 꼭 건강했으면 좋겠네.